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잃어버린 것은 개였을까, 아니면 우리의 존엄이었을까: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감독의 데뷔작

by 메이인러브 2025. 4. 18.

 

“개가 사라졌다, 인생도 사라졌다”
현실과 환상 사이, 웃픈 인생 단면을 향한 블랙코미디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우리 주변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삶,
그 속의 무기력과 광기,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을 아주 기묘하게,
때론 우습게, 때론 씁쓸하게 그려낸 블랙코미디.

 

 

 

줄거리 

 

 

대학교수 임용을 기다리는 고윤주(이성재)는
백수나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임신한 아내는 점점 예민해지고,
경제적인 압박에 시달리는 윤주는
자신의 삶이 조여오는 느낌에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하다.

그의 스트레스는 아파트 복도에서 들려오는
강아지 짖는 소리에서 폭발한다.
결국 그는 복도에 있던 개를 몰래 끌고 가
지하실에 감춘다.
그러나 그 개는,
자신이 생각했던 개가 아니었다.

한편, 아파트 관리실에서 일하며
소소한 삶을 살아가던 **현남(배두나)**은
실종된 개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전단을 붙이며 돌아다니고,
자신도 모르게 이 수상한 사건에 휘말려 들어간다.

개 한 마리의 실종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작은 사건들을 통해 꼬이고,
각자의 일상과 불만, 불안과 열등감이 드러나며
아파트라는 공간은 기묘한 사회의 축소판이 되어간다.

고윤주는 더 깊은 구멍으로 빠져들고,
현남은 그 뒤를 쫓듯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개는,
우리의 무의식과 욕망을 비추는 거울처럼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명대사

“나도 언젠가는 뭔가 큰일을 해낼 수 있을 줄 알았어.”
– 현남(배두나)

 

이 대사는 이 영화 속 인물들이 지닌
가장 인간적인 환상과 좌절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작고 평범한 사람들의 '꿈'이
현실의 벽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담담하게 드러낸다.

 

 

 

나의 리뷰

 

《플란다스의 개》는 전형적인 영웅도 없고,
드라마틱한 갈등도 없다.
오히려 너무 평범하고, 너무 답답해서,
웃음이 나다가도
어느새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영화다.

봉준호 감독은 데뷔작부터
사회 구조 속의 부조리함을
유머와 블랙코미디를 통해 날카롭게 해부한다.
개를 소재로 시작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개를 찾는 사람,
개를 없애려는 사람,
그저 흘러가는 사람들.
모두 어딘가 결핍되어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확신이 없다.

특히, 고윤주는
누군가의 개를 납치해놓고도
자신의 인생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의 모습은 코미디이지만
그 안엔 확실한 현실 풍자가 숨어 있다.
현남은 그와 반대로
어쩌면 가장 무기력해 보이지만
작고 소소한 정의감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봉준호 감독은 ‘개’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 잔인함마저 일상의 일부처럼 받아들이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영화 말미,
현남은 결국 아무 일도 바뀌지 않는 세상을 향해
묵묵히 일상을 이어나간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녀가 개를 찾는 동안 보여준 태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플란다스의 개》는
잔잔한 듯 보이지만
마음 한구석을 찌르는 날이 서 있다.
웃으며 봤지만,
나중엔 괜히 허탈한 마음이 드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