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열차 안,
인류의 마지막 생존지에서 벌어지는 계급 혁명
전 세계가 얼어붙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한 이후
오직 하나,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만 인간은 살아남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과 혁명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은유다.
세계관과 배경
영화는 인류가 환경 재앙을 막기 위해 대기 중에 화학 물질을 살포하다
오히려 지구 전체가 빙하기에 빠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세상,
전 인류는 윌포드라는 남자가 만든 기차 한 대에 올라탄다.
영원히 달리는 열차, 설국열차.
열차는 계급 구조로 나뉘어 있고,
앞칸은 권력자들이,
뒷칸은 착취당하는 빈민들이 차지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작은 열차 안에서
전 세계의 축소판을 만들어낸다.
가난, 억압, 폭력, 저항, 그리고… 진실.
줄거리
영화는 열차의 가장 뒤칸, ‘꼬리칸’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좁고, 어둡고, 음식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매일 같은 단백질 블럭으로 연명하며
앞칸의 명령에 따라 억눌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가 있다.
그는 오랜 시간 준비해온 반란을 실행에 옮긴다.
기차의 보안시스템을 만든 **남궁민수(송강호)**와 함께
하나둘씩 문을 열고,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것은
상상도 못한 세상이다.
초등학교가 있고, 클럽이 있고,
심지어 초호화 디너가 있는 앞칸의 사람들.
열차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닌,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윌포드는 ‘질서’라는 이름으로,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자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커티스는 마지막 칸, 기관실에 도달한다.
거기서 그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윌포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반란조차도 시스템의 일부였다.
명대사
“당신은 왜 앞칸에 가려고 합니까?”
“왜냐하면, 그게 옳으니까요.”
커티스의 이 말은
단순한 혁명을 넘어서
인간의 본능적 정의감에 대한 선언이다.
“난 그 아이의 팔을 먹으려 했어.
근데, 길리엄이 자기 팔을 잘랐지.
그래서 난… 안 먹었어.”
– 커티스
이 대사는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속에서도 희생과 인간성은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리뷰
《설국열차》는 단순히 “앞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질문이 들어 있다.
왜 앞칸에 가야 하는가?
앞칸에 도달했을 때, 과연 새로운 세상이 존재하는가?
그저 또 다른 억압이 기다리고 있을 뿐은 아닐까?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기차라는 공간을 무대 삼아
완벽한 사회적 계급 구조를 세워놓고
한 인간이 그것을 부수려는 과정을 밀도 있게 따라간다.
기차는 결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앞칸은 가진 자, 뒷칸은 못 가진 자.
그리고 그 사이의 칸들은 사회의 다양한 계층들이다.
무너진 듯 보여도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한다.
폭력과 공포로 유지되는 세상.
그러나 이 영화는 단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차가 파괴되고, 눈밭 위에 서 있는 아이와 여자의 모습.
그건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다시 자연과 맞설 것이고,
이번엔 조금 더 다르게 살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